1982년 시드 마이어와 빌 스틸리가 함께 세운 마이크로프로즈는 원래 비행·전차 시뮬레이터(건십, 스핏파이어 에이스, F-15 스트라이크 이글)와 건조한 전략 워게임(크루세이드 인 유럽)으로 알려진 회사였다. 그런 회사가 1986년 '시드 마이어의 해적!(Sid Meier's Pirates!)'을 승인하고 이듬해 출시했을 때, 그 결과물은 이전 마이어 게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낯선 물건이었다. 회사의 창업자 이름을 처음으로 제목에 내건 작품이라는 상징성도 컸지만, 정작 게임 자체는 무엇이라 부르기 애매했다. 출시 당시에는 '액션 어드벤처'로 분류됐는데,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그 장르와는 사실상 공통점이 없다. 캐슬바니아, 메트로이드, 젤다의 전설 같은 동시대 작품과 나란히 놓기 어려운 것이다.
올해로 40년을 맞은 이 게임을 다시 들여다보는 이유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해적!에는 플랫포밍이 없고, 플레이어 캐릭터를 직접 조작하는 순간은 짧은 검술 대결뿐이다. 그 검술마저 다른 어떤 게임의 전투와도 닮지 않았다. 에롤 플린식 펜싱 결투의 감각을 흉내 내려고, 빠른 '찌르기', 피해가 큰 '베기', '막기'를 상단·중단·하단 세 방향과 조합하는 복잡한 조작 체계를 얹었다. 이 동작들은 코모도어 64 같은 80년대 컴퓨터의 8방향 조이스틱에 매핑됐고, 조이스틱이 없으면 키보드 숫자패드로, 일부 이식판에서는 마우스나 어색한 마우스·키보드 조합으로 입력했다. 2004년 리메이크는 이 검술을 크게 단순화했지만, 껍질을 벗겨내자 드러난 것은 표준 전투 설계에 대한 타협이 아니라 일종의 리듬 게임에 가까운 또 다른 기묘함이었다.
장르에 붙들리지 않은 설계
어린 시절 이 게임을 접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균열이 생긴다. '더 배니시드 볼트'와 '앰버스파이어'의 디자이너 닉 트린갈리는 해적!을 두고 "장르에 고정되지 않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오픈월드도 롤플레잉도 아니고, 경제 전략이나 자원 관리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플레이어가 들어가 살아야 할 명확한 주제적 위치를 목표로 두고,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시스템과 마찰을 사용한다고 봤다. 바람이 늘 동쪽으로 분다든가, 적 선장과의 결투에서 이기면 해전이 곧바로 끝난다든가 하는 특이점들은 장르적 기대나 기성 아이디어의 재포장이 아니라 그 설계와 분리할 수 없는 고유함이라는 것이다.
마이어 자신도 2020년 회고록 '시드 마이어의 회고록!'에서 당시를 이렇게 정리했다. 게임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선입견이 거의 없었다는 점은 좋은 소식이었지만, 검증된 관습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은 나쁜 소식이었다고. 해적!의 모든 부분이 그런 첫 원리(first principle)에서 출발한 시도다. 마이어의 머릿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던 해적 클리셰들을 게임 메커니즘으로 끌어내려는 작업이었던 셈이다.
낭만이 규칙이 될 때
주목할 점은 이 게임이 보물섬, 에롤 플린 영화, 피터 팬, 그리고 스페인을 악마화한 이른바 '흑색 전설'이 영미 문화에 남긴 이미지 같은 낭만적 재료들을 이야기의 장면이나 장식으로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그것들을 만지작거릴 수 있는 태엽 세계의 근본 규칙으로 삼았다. 게임은 은이 포토시에서 노새 대상을 통해 파나마까지 운반되고, 그란콜롬비아의 항구들을 거쳐 보물 함대에 실려 스페인으로 떠나는 경로를 모델링한다. 해적의 고된 삶이 세월과 함께 몸을 갉아먹어, 상선 선장이나 식민지 경비병이 조금씩 더 빨라지다가 결국 내 칼 솜씨가 예전 같지 않음을 인정하게 되는 과정도 시뮬레이션한다.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무작위 생성 퀘스트를 카리브해에 뿌려, 악당 귀족들을 추적하며 외딴 플랜테이션의 강제 노역에서 친척을 하나씩 구해내게 만든다.
현대적 감각으로 보면 해적!은 '미니게임들을 트렌치코트로 감싼 것'처럼 보일 위험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게임이 표현하는 것은, 매체가 스스로 관습과 클리셰와 재활용된 아이디어의 서고를 쌓아 올리는 동안 우리가 눌러 덮어버린 사고방식이다. 이런 원석 같은 설계는 해적!만의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대부분 잊힌 스튜디오 시네마웨어는 이 방식으로 사업을 일궜고, 1989년작 '잇 케임 프롬 더 데저트'는 초보적 1인칭 사격장과 탑다운 슈팅, 비주얼 노벨, 전략 게임의 외피를 넘나들었다. 던 II 이전의 원작 '듄' 역시 향신료 채취 전략과 영화 줄거리를 옮긴 비주얼 노벨 사이를 오갔다.
해적!은 당대에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고, 이 설계 사고방식은 마이크로프로즈의 후속작 '커버트 액션'과 '소드 오브 더 사무라이'로 이어지며 스튜디오의 정체성 자체를 바꿔놓았다. 그럼에도 이 시대 전체는 매체의 집단 기억에서 도려내진 구멍처럼 느껴진다. 당시 PC 게임 시장이 얼마나 소규모였는지를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아미가 500 한 대가 팔리는 동안 닌텐도는 NES를 23대, 게임보이를 45대 팔았다. IBM PC 통합과 PC 게임의 진정한 대중화는 아직 몇 년 뒤의 일이었고, 1993년 256색 리마스터 '해적! 골드'가 도스로 나왔을 때는 이미 울펜슈타인 3D 같은 플랫폼 정의급 게임과 경쟁해야 했다. 1982년부터 1990년까지의 이 시기가 잡지 부록 CD, 망해가는 퍼블리셔의 염가판, 어밴던웨어 사이트를 통해서나 겨우 기억된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장르 문법이 실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합의임을 새삼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