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쓰면 엔지니어가 2배, 5배, 심지어 10배 더 생산적이어야 한다." 요즘 많은 경영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실제로 AI 코딩 도구는 개발 방식을 바꾸고 있고, 매일 쓰는 사람도 늘고 있다. 하지만 13년 넘게 엔지니어와 엔지니어링 매니저를 거친 저자 그레고르 오이스터섹은 이 열풍에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도구 자체보다, 그 도구가 놓이는 환경, 즉 조직 문화가 훨씬 더 큰 변수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단순하다. 좋은 문화만큼 강력한 생산성 향상 수단은 없으며, 어떤 AI 도구도 그것을 대체하지 못한다.
콘웨이 법칙이 말하는 것
왜 좋은 도구를 넣어도 생산성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을까. 저자는 콘웨이 법칙을 근거로 든다. 시스템을 설계하는 조직은 그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그대로 닮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법칙이다. 여기서 핵심은 최종 산출물이 조직 문화를 닮는다는 점이다. 부서끼리 하루 종일 책임을 떠넘기고 소통이 막혀 있으면, 그 제품 역시 그 단절을 반영한다. 반대로 협업이 잘 되는 팀은 결과물도 좋을 확률이 높다. 저자는 문화를 인간의 건강에 비유한다. 건강이 무너지면 무엇도 제대로 할 수 없듯, 문화가 나쁜 조직은 다른 모든 것이 함께 나빠진다.
그리고 AI는 이 구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증폭시킨다. 나쁜 커뮤니케이션 위에 AI를 얹으면 잘못된 소통이 더 빨라지고, 엉성한 아키텍처 위에 얹으면 그 엉성함이 더 빠르게 퍼진다. 반대로 아키텍처와 협업이 탄탄하면 AI는 "좋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을 얻어 실제로 팀을 배가시킨다. 결국 AI 도입은 문화라는 토대 위에서만 방향이 맞는다. 토대가 없으면, 조직은 그저 잘못된 방향으로 더 빨리 달려갈 뿐이다.
10배 생산성이라는 마케팅
저자가 특히 경계하는 것은 경영진이 빠지는 FOMO다. 경쟁사나 어떤 회사가 특정 도구로 생산성이 10배 올랐다고 발표하면, CEO는 조바심을 내고 주변을 다그치기 시작한다. "왜 우리는 안 되느냐"는 질책은 심리적 안전감을 무너뜨린다. 특히 AI 도입의 선봉으로 여겨지는 엔지니어와 엔지니어링 리더가 그 압박을 정면으로 받는다. 저자는 그런 화려한 수치 상당수가 특정 제품을 팔거나 파트너십을 홍보하려는 마케팅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누군가의 주장을 들을 때는 그 뒤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를 먼저 보라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더 나아가 "AI가 있으니 너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뉘앙스는 문화를 가장 확실하게 파괴한다. 사람들이 자기 일의 가치를 의심하고 대체 여부를 걱정하기 시작하면 사기와 신뢰가 동시에 무너진다. 이런 발언이 CEO, CPO, 특히 CTO 같은 최고 경영진에게서 나올 때 타격은 훨씬 크다.
리더십의 문제, 도구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AI 도입을 어떻게 메시지로 전달해야 할까. 저자가 효과적이라고 본 방식은 AI를 그동안 등장한 여러 도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뛰어난 엔지니어는 늘 자신의 일을 더 잘하게 해주는 도구를 배우고 활용해 왔으며, 그 본질은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프레임이다.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도입 방향이다. AI 도입은 위에서 강제하는 톱다운으로는 작동하지 않고, 현장에서 지식을 주고받는 보텀업으로만 정착한다. 도구가 매일 쏟아지는 속도를 감안하면 지속적인 상호 학습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AI 도입을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십의 문제로 규정한다.
주목할 점은 목표 설정이다. "모두가 AI를 쓰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 순간 이미 방향이 틀어진 것이라고 그는 본다. AI 사용률 자체가 아니라 비즈니스 성과와 전체 결과물이 목표여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AI 시대일수록 엔지니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 뽑아야 한다는 지론을 편다. 좋은 문화가 전제된다면 사람이 늘수록 생산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시장 대응 속도(TTM)가 승부를 가르는 지금 낮은 생산성은 오히려 장기적 시장 점유율을 갉아먹는 부채라는 논리다.
한국의 실무자 입장에서 이 글은 익숙하면서도 불편한 거울이다. 경영진의 생산성 압박, 톱다운 도입 지시, 인력 감축 기대는 국내 조직에서도 흔한 풍경이다. 다만 이 글은 구체적인 데이터나 사례로 뒷받침되기보다 저자의 경험과 확신에 크게 기대고 있어, "문화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라는 실행 단계에서는 각자의 맥락에 맞는 판단이 필요하다. 저자가 던지는 마지막 질문은 그 출발점이 될 만하다. 리더가 물어야 할 것은 "어떻게 모두가 AI를 쓰게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훌륭한 사람들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그 위에서 AI로 그들을 배가시킬까"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