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공개일 · 8월 18일1차 강의가 모두 공개됩니다
TECH 으로 돌아가기
TECH HACKER NEWS 오늘 7분 읽기 21 READS

녹음 기술이 낳은 웃음소리: 마그네토폰과 '캔 사운드'의 기원

녹음 기술이 낳은 웃음소리: 마그네토폰과 '캔 사운드'의 기원
SOURCE IMAGE · HACKER NEWS

한 편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는 관객의 웃음소리가 실제 그 순간에 터진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방송 종사자에게는 상식에 가깝다. 그러나 이 '웃음 트랙(laugh track)'이라는 편집 기법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따라가면, 뜻밖에도 1930년대 독일에서 개발된 고음질 릴 방식 자기 테이프 녹음기 마그네토폰(Magnetophon)에 닿는다. 값싼 담배를 만들려던 한 엔지니어의 아이디어, 휴가를 원했던 미국 최고 인기 가수, 그리고 전쟁의 전리품이 얽히면서 녹음과 편집의 문법 자체가 바뀌었다.

종이 위에 소리를 새기다

출발점은 독일 발명가 프리츠 플로이머였다. 1920년대 초 드레스덴에서 산업용 종이 제품을 다루던 그는 고급 담배의 금박 장식을 대체하기 위해 청동 분말을 쓰는 저렴한 공정을 고안했다. 여기서 그는 발상을 한 단계 옮겨, 청동 분말 대신 자성 물질을 종이에 입히면 소리를 기록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1898년 덴마크 엔지니어 발데마르 포울센이 금속 와이어에 소리를 녹음한 전자기계식 기술을 응용한 셈이다. 1928년 그는 '소리 나는 종이'와 이를 재생할 녹음기를 특허로 냈다. 음질은 조악하고 종이는 쉽게 찢어졌지만, 잘라서 편집할 수 있고 지운 뒤 다시 녹음할 수 있다는 두 가지 장점은 이후 자기 녹음의 핵심 자산이 된다.

플로이머는 상용화를 위해 1932년 대기업 AEG와 계약했고, AEG는 하드웨어를, 이게파르벤(현 BASF의 전신)이 테이프를 맡는 분업 체제를 꾸렸다. 두 팀은 제품을 '마그네토폰'이라 이름 붙였다. 1934년 베를린 라디오쇼 데뷔는 완성도가 부족해 이틀 전 취소됐지만, 이듬해인 1935년 재도전은 성공했다. 이후 AEG는 여러 파생 모델을 거쳐 1938년 상업적으로 성공한 첫 기종 K4를 내놓는다.

AC 바이어스가 만든 '구분 불가능'한 음질

K4의 결정적 진전은 AC 바이어스 기술이었다. 통상 40~150킬로헤르츠의 고주파 신호를 녹음에 함께 실어주는 이 방식은 사람 귀에 들리지 않으면서도 잡음과 왜곡, 특히 조용한 구간의 히스 노이즈를 크게 줄였다. 결과적으로 청취자는 생방송과 사전 녹음 방송을 구별할 수 없게 됐다. 이 '구분 불가능성'은 곧 정치적으로 이용됐다. 나치 선전상 괴벨스와 히틀러는 라디오의 힘을 잘 알았고, 마그네토폰 덕분에 히틀러의 녹음 연설을 실제 그가 있는 곳과 다른 방송국에서 송출할 수 있었다. 연합군이 그의 위치를 특정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미국이 이 기술을 뒤늦게 접했다는 통설은 절반만 맞다. 필자 앨리슨 마시가 인용한 프리드리히 K. 엥겔의 기록에 따르면, AEG의 미국 계열사는 이미 1937년 11월 마그네토폰을 받아 제너럴일렉트릭(GE) 엔지니어들에게 시연했다. 그러나 GE 측이 기술을 대수롭지 않게 일축하면서, 미국은 결국 종전 이후에야 이 기술을 제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전리품에서 방송 산업의 표준으로

재도입의 주역은 미 육군 통신부대 소속 전기공학자 잭 멀린이었다. 영국과 파리에 주둔하며 라디오를 즐겨 듣던 그는, 한밤중 독일에서 흘러나오는 '생방송' 오케스트라 연주에 사전 녹음 특유의 잡음이 없다는 점을 눈치챘다. 종전 후 독일의 한 방송국에서 실물을 확인한 그는 1945년 귀국하며 분해한 마그네토폰 두 대와 테이프, 회로도를 캘리포니아로 가져왔다.

여기에 빙 크로스비가 합류한다. 당시 최고 인기 가수였던 그는 동부와 서부용으로 같은 방송을 세 시간 간격으로 두 번 하는 일에 지쳐 있었다. 사전 녹음을 원했지만 NBC는 거절했고, 그는 1년을 쉰 뒤 녹음 방송을 허용한 신생 방송사 ABC로 옮겼다. 마침 멀린이 캘리포니아에서 마그네토폰을 시연하고 있었고, 1946년 크로스비의 기술 프로듀서 머도 매켄지가 이를 주선해 시연을 성사시켰다. 크로스비는 곧바로 미국판 마그네토폰을 개발하던 앰펙스(Ampex)에 5만 달러(현재 가치 약 80만 달러)를 투자했고, 테이프는 3M이 맡았다. 1947년 그는 공연을 사전 녹음한 미국 최초의 대형 라디오 스타가 됐다.

편집이 만들어낸 '가짜 웃음'

성공의 상당 부분은 장비 자체였지만, 멀린의 편집 솜씨도 컸다. 여러 번의 테이크에서 가장 좋은 부분을 이어 붙여 매끄러운 공연을 완성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게스트가 방송에 내보내기엔 다소 야한 농담을 던졌는데, 농담은 못 써도 관객의 폭소는 아까웠다. 제작진은 곧 정중한 킥킥거림부터 우렁찬 폭소까지 다양한 웃음소리 목록을 만들었고, 농담이 시원찮으면 후반 작업에서 웃음을 덧입혔다. 실무적으로 보면 이는 '잘라 붙이고 다시 쓸 수 있다'는 자기 테이프의 본래 강점이 콘텐츠 제작 논리로 확장된 순간이었다. 편집 가능성이 곧 '현실의 재구성 가능성'으로 번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두 주역의 온도차다. 크로스비의 딸 메리에 따르면 그는 농담만 재미있다면 실제 관객 여부는 중요치 않다고 여겼다. 반면 멀린의 딸 이브에 따르면 정작 멀린은 이 편집을 불편해했다. 그가 마그네토폰에 매료된 이유는 공연과 사건,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담아낸다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애써 다듬은 기술이 '통조림 반응'을 찍어내고 현실을 조작하는 데 쓰이는 것을 달가워하기 어려웠던 셈이다. 기술을 옹호한 사람조차 그 쓰임을 끝내 통제하지 못한다는 이 일화는, 녹음·생성 기술이 진위 판별을 흔드는 오늘의 미디어 환경에도 그대로 겹쳐 읽힌다. 다만 이 기사는 특정 인물의 회고와 관련 저술에 기댄 서술인 만큼, 웃음 트랙의 '최초' 기원이라는 단정보다는 그 계보의 한 결정적 국면으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다.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spectrum.ieee.org/magnetophon-laugh-track
SHARE
NEXT · CHOOSE

변화를 읽었다면,
내가 만들 수익 구조를 고릅니다.

정보를 더 모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광고·외주·판매·중개·구독 중 내 상황에 맞는 출발점을 정해보세요.

21가지 수익 구조 살펴보기
처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