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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최초의 로봇 '학천칙'이 던진 오래된 질문

동아시아 최초의 로봇 '학천칙'이 던진 오래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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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후반 일본 오사카에서 만들어진 학천칙(學天則, 가쿠텐소쿠)은 동아시아 최초로 제작된 로봇으로 기록된다. 이름은 '자연의 법칙에서 배운다'는 뜻이다. 제작자는 홋카이도 제국대학 교수를 지낸 생물학자 니시무라 마코토였다. 그는 마리모(호수에 사는 녹조류의 둥근 군체)를 연구했고,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현 마이니치 신문)의 편집 고문으로도 활동한 인물이다. 공학자가 아니라 생물학자가 로봇을 구상했다는 점부터가, 이 기계가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니시무라의 문제의식은 카렐 차페크의 희곡 'R.U.R.'로 대표되던 당시의 로봇관에 대한 반발이었다. 로봇을 인간에게 봉사하는 노예로 그리는 시각에 그는 거부감을 느꼈고, 그 대신 자연과 인간성을 기리는 로봇, 노예가 아니라 친구이자 영감을 주는 모범이 되는 기계를 만들고자 했다. 그는 1926년 홋카이도 제국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오사카로 옮겨 소규모 조수 팀과 함께 제작에 착수했다. 이렇게 완성된 학천칙은 1928년 9월 교토에서 처음 공개됐고, 이듬해에는 도쿄·오사카·히로시마는 물론 조선(조선박람회)과 중국에서도 전시됐다.

공기압으로 움직인 '표정 짓는' 기계

학천칙의 작동 방식은 오늘날의 전기 모터나 디지털 제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공기압 기구를 이용해 표정을 바꾸고 머리와 손을 움직였다. 오른손에는 펜 모양의 지시용 화살표를, 왼손에는 '영감등(靈感燈)'이라 이름 붙인 램프를 들었다. 머리 위에는 새 모양의 소형 로봇 '고교조(告曉鳥, 새벽을 알리는 새)'가 앉아 있었다. 이 새가 울면 학천칙은 눈을 감고 사색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고, 램프가 빛나면 펜으로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노동을 대신하는 장치가 아니라, 표정과 몸짓으로 어떤 정신적 상태를 연출하도록 설계된 셈이다.

이 대목이 학천칙을 단순한 초기 자동기계 이상의 대상으로 만든다. 20세기 초의 로봇 담론이 대개 '노동력 대체'나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두 축을 오갔다면, 학천칙은 그 어느 쪽도 아닌 제3의 방향을 실물로 제시했다. 기계가 사색하고 글을 쓰는 모습은 실용적 기능이라기보다 하나의 상징적 퍼포먼스에 가까웠다. 기술의 목적을 효율이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 그 자체에 두려 했다는 점에서, 이 기계는 오늘날 인간-기계 상호작용이나 소셜 로봇을 논할 때 소환될 만한 이른 사례다.

사라진 원본, 그리고 되살아난 복원본

학천칙의 결말은 다소 허무하다. 1930년대에 자취를 감췄고, 사라진 경위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화제를 모았던 기계가 어떤 이유로,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원본이 실물로 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학천칙의 모습과 동작 방식은 상당 부분 당시의 기록과 설명에 의존한다. 다만 그 존재감이 완전히 잊힌 것은 아니어서, 소행성 하나에 '9786 Gakutensoku'라는 이름이 붙었다. 2008년에는 오사카 시립과학관이 현대판 학천칙을 제작해 전시하고 있다.

한국 IT 실무자의 관점에서 학천칙이 주는 시사점은 기술적 사양보다 기획의 태도에 있다. 이 로봇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먼저 정의하고 그에 맞춰 형태와 동작을 설계했다. AI 서비스나 로봇, 대화형 에이전트를 만들 때에도 기능 목록을 먼저 쌓기보다, 사용자가 그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길 바라는지를 먼저 규정하는 접근이 있을 수 있음을 이 100년 전 사례가 보여준다.

동시에 한계도 분명히 짚어야 한다. 학천칙은 공기압으로 정해진 동작을 연출하는 장치였을 뿐, 스스로 학습하거나 환경에 반응해 판단하는 기계가 아니었다. '자연의 법칙에서 배운다'는 이름과 사색하는 표정은 어디까지나 연출된 은유였다. 또한 조선박람회 순회 전시가 보여주듯 이 기계는 당시 일본 제국의 문화 전시망을 따라 이동했으며, 그 시대적 맥락을 걷어낸 채 순수한 기술사의 낭만으로만 소비하기는 어렵다. 원본이 소실된 탓에 세부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학천칙은 명확한 성취의 기록이라기보다 초기 로봇 상상력의 한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en.wikipedia.org/wiki/Gakutenso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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