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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나치 로켓 과학자: 냉전기 기술 이전과 인재 쟁탈의 그늘

사라진 나치 로켓 과학자: 냉전기 기술 이전과 인재 쟁탈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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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7월 21일, 이집트 와디 엘 나트룬의 황량한 사막에 기자들이 모였다.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네 발의 지대지 로켓이 차례로 하늘로 솟아 지중해에 떨어졌다. 이집트 정부는 집회와 불꽃놀이를 열었고, 카이로 상공에서는 비행기가 사탕을 뿌렸으며, 국영 라디오는 나라가 '미사일 시대'에 들어섰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시연 뒤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독일 기술자들의 그림자,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건이 숨어 있었다.

기술은 있는데 공장이 없었던 나라

스미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의 우주사 부문 전 수석 큐레이터 마이클 노이펠트 박사는 당시 이집트의 나치 과학자 영입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전후 미사일 기술은 전 세계로 퍼지고 있었고, 독일인은 그 흐름의 일부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1956년 이스라엘·영국·프랑스의 수에즈 운하 공격을 겪은 나세르에게 이스라엘을 위협할 장거리 화력은 절실한 목표였다.

문제는 이집트에 로켓을 대량 생산할 산업 기반이 없었다는 점이다. 나세르가 손에 쥔 것은 영국군 병원을 항공기 엔진 공장으로 개조한 헬리오폴리스의 낡은 '333 공장'뿐이었다. 미국도 소련도 무기 개발을 돕지 않으려 하자, 나세르는 미사일 기술의 원조인 독일인들에게 눈을 돌렸다. 전직 나치·SS 장교들이 대거 포진한 겔렌 조직의 수장 라인하르트 겔렌은 나세르를 무솔리니 구출 작전으로 유명한 특수전 지휘관 오토 스코르체니와 연결해 주었다.

셸컴퍼니를 통한 부품 조달망

연합국에도 소련에도 협력을 거부한 나치 로켓 기술자들이 1960년대 초 이집트로 모여들었다. V-1 비행폭탄 설계에 관여한 볼프강 필츠, 추진 기관 전문가 오이겐 젱거, 그리고 한스 클라인베히터와 한스 괴르케 등이 그들이었다. 핵심 인물은 젱거의 동료였던 하인츠 크루크였다. 그는 슈투트가르트의 제트추진물리연구소 관리자로 일하다 이집트와 관계를 맺었고, 1960년부터는 이집트 국방부와 연결된 위장 회사 '인트라 상사(INTRA Commercial Company)'의 전면에 나섰다. 뮌헨 사무실을 거점으로 미사일 부품을 조달·발송하는 일이 그의 임무였다.

독일 기술진은 빠르게 성과를 냈다. 1961년에는 333 공장에서 시제품 시험이 시작됐고, 나일강을 따라 멤피스와 헬완 인근의 '36 시설'과 '135 시설'에서도 로켓이 양산됐다. 1962년 카이로 시가행진에는 미사일 20기가 등장해 중동을 긴장시켰다. 동시에 이스라엘도 자체 무기 개발에 나서 준궤도 미사일 발사에 먼저 성공했고, 이는 나세르의 불안을 키웠다.

'다모클레스 작전'과 크루크의 실종

위협을 느낀 이스라엘은 독일 국적자인 이 과학자들을 막으라고 서독을 압박했다. 겔렌은 이스라엘과의 협력을 택했고, 저자 오언 서스에 따르면 서독 정보기관은 모사드의 활동을 직접 지원했을 가능성이 있다. 협박 캠페인이 이어졌고 젱거는 1961년 11월 자신이 세운 연구소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크루크는 뮌헨 사무실에서 일을 계속했다.

1962년 모사드는 '다모클레스 작전'을 시작했고, 첫 표적은 생산 조율을 총괄하던 크루크로 보인다. 9월 11일 '살레'라는 이름의 젊은 남자가 사무실을 찾아와 30분쯤 대화한 뒤 크루크의 차로 함께 떠났다. 크루크는 돌아오지 않았고, 며칠 뒤 그의 차는 진흙투성이가 된 채 뮌헨 교외 죌른에서 발견됐다. 경찰에는 그가 죽었다는 익명 전화가 걸려왔다. 이후 필츠의 비서는 편지 폭탄으로 실명했고, 다른 공장 사무실에서 터진 폭탄은 이집트인 다섯 명의 목숨을 앗았다. 클라인베히터는 1963년 바이에른에서 모사드 요원들의 총격을 목도리에 총알이 스치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피했다.

결국 서독 정부는 미사일 부품 조달에 관여한 기업들과의 계약을 끊고 1963년 과학자들에게 활동 중단을 촉구하는 경고 서한을 보냈다. 일부는 1964년까지 버텼지만 총을 지니고 우편물을 검사하며 공포 속에 살았다. 크루크가 오스트리아에서 가명으로 여생을 보냈다는 설, 숲에 묻혔다는 설, 심지어 스코르체니가 모사드의 협박으로 그를 살해했다는 설까지 떠돌지만, 서스는 스코르체니를 유력한 범인으로 보지 않는다. 진실은 뮌헨의 버려진 차에서 걸어 나간 누군가와 함께 묻혔다.

60년 전 사건이 지금 던지는 질문

이 이야기는 오래된 첩보극이지만, 기술 산업 종사자에게는 낯설지 않은 구조를 담고 있다. 자체 역량이 부족한 주체가 완제품이 아니라 '사람'과 노하우를 사들여 격차를 메우려 했고, 그 이전 통로는 위장 회사를 통한 부품 조달망으로 굴러갔다. 오늘날 반도체·항공·AI 분야의 수출 통제와 인재 유출 논란이 결국 기술 자체보다 그것을 아는 사람과 공급망을 겨냥한다는 점을 떠올리면, 표적이 된 것이 공장이 아니라 엔지니어 개개인이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다만 여기서 소개한 크루크의 최후, 스코르체니의 관여, 정보기관 간 협력의 구체적 정황은 상당 부분 추정과 상충하는 진술에 기대고 있어, 확정된 역사라기보다 아직 열려 있는 물음으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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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전체 보기 → https://www.popularmechanics.com/military/a73358518/nazi-r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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