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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聖人) 체호프라는 신화: 편지로 사랑을 겨룬 한 인간의 재발견

성인(聖人) 체호프라는 신화: 편지로 사랑을 겨룬 한 인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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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는 오랫동안 '절제의 성인'으로 읽혀왔다. 소련은 그를 혁명 이전 시대의 민중 영웅으로 소환했다. 공중보건 위기에서 환자를 돌본 의사, 유형지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가 초기 사회조사에 가까운 기록을 남긴 관찰자, 학교와 도서관과 요양소를 짓는 데 힘을 보탠 실천가, 그리고 국가가 무신론을 정책으로 삼기 전부터 신을 믿지 않은 사람. 1904년 44세로 결핵에 스러진 그는 레닌과 스탈린 치하의 삶을 그릴 기회조차 없었으니, 이념이 덧칠하기에 오히려 안전한 인물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냉전이 끝나갈 무렵 서구의 문예창작 교실도 같은 체호프를 자기편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캐서린 맨스필드, 헤밍웨이, 레이먼드 카버, 조앤 디디온, 앨리스 먼로 같은 영미권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을 근거로, 미국 작문 프로그램은 그의 절제되고 균형 잡힌 미학을 가르쳤다. 정작 학생들이 사랑한 것은 통제 불능의 격정적 작가들이었는데도 말이다. 의학을 '아내', 문학을 '정부(情婦)'라 부른 이 잘생기고 유명한 남자는 그렇게 금욕적인, 어쩌면 순결하기까지 한 대가로 굳어졌다.

만들어진 성인, 지워진 인간

이 이미지의 상당 부분은 체호프 자신이 가꾼 것이기도 하다. 젊은 여성 친구들을 방문한 사진에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이라는 농담 섞인 제목을 붙여 세속성을 반어로 눌러버리는 식이었다. 그러나 1997년 도널드 레이필드의 전기는 미발표 회고록과 편지를 동원해 이 초상을 뒤집었다. 십대 시절 고향에서 유부녀와 관계를 맺은 일부터, 결혼 전 친구의 누이 리디야 미지노바와의 오랜 관계, 그 사이 25년에 걸친 여러 여성들과의 다양한 얽힘까지. 오랜 가족 친구인 학자 마이클 핑크는 저서 '체호프 보기(Seeing Chekhov)'에서, 서구에서 금욕적 체호프 상이 오래 버틴 데에는 학자들이 문서고 자료에 접근하지 못한 사정이, 소련 쪽에서는 검열뿐 아니라 사려 깊은 신중함과 해석 틀의 부재가 작용했다고 짚는다.

왜 이런 재구성이 중요한가. 핑크와 이 글의 논지가 던지는 질문은 날카롭다. 삶을 납작하게 만들면 작품을 가능하게 한 원천 자체를 막아버리는 것 아닌가. 온전히, 명료하게 보는 것이 예술가로서 체호프의 집착이었다면, 정작 그와 그 상대들의 온전한 인간성을 보지 않는 것이야말로 일종의 세속적 죄가 아닌가. 인물을 다룰 때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읽기 좋은 서사'를 위해 실제를 삭제하는지를, 이 사례는 정확히 보여준다.

편지로만 유지된 사랑

말년의 사랑 이야기도 낭만적 통념과는 결이 다르다. 1898년 갈매기 리허설에서 만난 배우 올가 크니페르와 그는 죽기 3년 전에야 결혼했지만, 관계의 대부분은 편지로 이뤄졌고 그 뒤로도 그러했다. 결핵을 앓던 그는 얄타와 니스로 요양을 떠나야 했고, 올가의 경력이 있는 모스크바와는 1,000마일이나 떨어져 있었다. 두 도시 사이에는 전화도, 영상통화도, 문자도 없었다. 전신은 느리고 값비쌌으며, 비행기는 없었고, 다른 교통수단은 며칠이 걸렸다. 상대의 삶은 99퍼센트가 미지였다. 제인 베네데티가 엮은 서한집 '친애하는 작가에게, 친애하는 배우에게'에서 사진 한 장을 받는 일은 거의 연례행사에 가까운 사건이었다.

장 베네데티의 서한집이 보여주는 대화는 다정하지만 깊지는 않다. 올가는 불안하고 더 의미 있는 말을 갈구하며 칭찬을 낚거나 서운함을 토로하고, 체호프는 멀찍이서 다정하게 놀리거나 부드럽게 나무라고 안심시킨다. 편지가 오지 않으면 곧바로 '무슨 뜻일까, 아직 나를 사랑할까' 하는 오해와 동요가 매주 반복됐다. 서로에게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직접적 행동이 '규칙적으로 편지를 쓰는 것'뿐이었던 셈이다. 이 대목은 오늘날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한 이들에게 낯설지 않다. 지연된 채널, 잃어버린 메시지, 응답 공백이 만들어내는 불안은 시대를 건너 반복된다.

그가 가장 널리 실린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1899)은 흔히 자전적 성숙의 기록으로 읽힌다. 얄타에서 만난 나이 든 구로프가 백발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진짜 사랑을 깨닫고, 안나를 하나의 실제 인간으로 보게 되는 이야기다. 나보코프는 이 작품을 '지금껏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로 꼽으며, '새롭고 영광된 삶이 시작될 것만 같았다' 같은 조건법과 유보의 표현에 주목했다. 사람이 살아 있는 한 그 고통과 희망과 꿈에 확정된 결말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편지 속 두 사람의 관계에도 초반 구로프와 안나처럼 아버지와 딸을 연상시키는, 소통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오히려 거리를 두는 체호프 특유의 냉정함이 배어 있다.

결말은 여전히 사람을 울린다. 독일 바덴바일러에서 임종을 지킨 올가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몸을 일으켜 독일인 동료 의사에게 예의를 갖추듯 독일어로 '나는 죽는다(Ich sterbe)'고 말했다. 의사가 관례대로 샴페인을 주문하자, 그는 잔을 바라보며 '샴페인을 마신 지 참 오래됐군요'라고 웃고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비우고 조용히 누웠다. 1897년 첫 대량 각혈로부터 세어보면 그는 결핵 치료법의 발견을 겨우 45년 차이로 놓쳤다. 올가는 이후 55년을 더 살며 재혼하지 않았고, 노년에는 극장 특별석에서 '자신의' 배역보다 먼저 대사를 읊었다고 한다. 성인도 순진한 이도 아니었던 이 완전한 인간에게서, 우리가 바라던 종류의 사랑이 정말 이뤄졌는지는 결국 사랑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실제를 지운 초상보다 결함까지 포함한 초상이 그의 작품을 훨씬 더 잘 설명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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