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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cker News 2026.08.08 26

AI 시대, 지식노동자들이 커리어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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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기차 안에서 EBITDA와 ARR, 마진 확대 기회를 무미건조하게 읊던 30대 직장인이 가방에서 꺼낸 것은 또 다른 노트북이 아니라 뜨개바늘과 분홍색 실뭉치였다. 조카에게 줄 겨울 모자를 뜨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눈에서 그날 아침 처음으로 자부심과 설렘이 반짝였다. 미국 크리에이티브 테크 기업의 AI 운영 책임자 에런 호워스가 노에마 매거진에 기고한 글은 이 장면에서 출발한다. 그는 최근 지식노동자 동료들 사이에서 도예, 그림, 뜨개질 같은 아날로그 취미로 도피하려는 욕구, "농장에서 살고 싶다"거나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다"는 말이 부쩍 늘었다고 관찰한다. 이것이 단순한 백일몽이 아니라 커리어 자체에 대한 근본적 회의에서 나온다는 점이 이 글의 핵심 문제의식이다.

반복되던 위기와 이번이 다른 점

지식노동자들은 불황, 아웃소싱, 자동화, 신기술을 이미 여러 차례 겪었다. 밀레니얼 세대는 커리어 내내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 일해왔다. 필자가 이번 국면을 다르게 보는 이유는 불안의 성격이 경제적이라기보다 실존적이라는 데 있다. 고소득 전문직이 모든 것을 던지고 워싱턴에서 염소 농장을 하거나 코스타리카에서 서핑 강사가 되는 상상을 진지하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수십 년의 조직 지식을 가진 임원과 시니어 전문가처럼 경제적 격변에서 가장 잘 보호받고 AI의 단기 충격을 무난히 넘길 위치에 있는 이들조차 자기 커리어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필자는 여기에 냉소적인 반론도 나란히 적어둔다. 2010년대에 "코딩을 배우라"고 훈수 두던 계층, 팬데믹 기간 배달 노동자들이 위험을 감수할 때 집 안에서 안전했던 계층, 그리고 지금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AI를 직접 만들고 있는 계층이 이제 와서 동정을 구하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이 비판이 정당하다고 인정하면서도, 한 계층 전체가 하루아침에 커리어에 대한 믿음을 잃으면 사회와 산업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워키즘'이라는 신앙과 그 균열

호워스는 2019년 데릭 톰프슨이 애틀랜틱에 쓴 개념 '워키즘(Workism)'을 끌어온다. 과거 세대가 종교에서 얻던 의미와 공동체, 성취감을 이제 고학력·고소득 미국인들이 일터에서 구한다는 것이다. 톰프슨의 표현처럼 그것은 감정적이고 심지어 영적이어서, 신자가 일요일에 교회에 가듯 사무실이 자신을 가장 자기답게 느끼는 장소가 된다. 문제는 교사·간호사·소방관·전기공처럼 힘든 날에도 무형의 보람을 주는 소명(vocation)과 달리, 오늘날 졸업생 다수가 몰려가는 금융·컨설팅·테크 직종에는 이타적 상승효과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필자는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불쉿 잡'을 인용해 출시되지 않을 프로젝트를 위한 슬라이드, 아무도 요청하지 않은 기능을 둘러싼 격론, 부자들 사이에서 돈을 옮기는 행정 절차, 승진 심사용으로만 잘 보이게 만드는 개발 같은 사례를 나열한다. 워키즘의 진짜 기능은 소명이 채워야 할 영혼의 구멍을 잊게 만드는 마취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신앙은 종교처럼 논리보다 믿음에 의존하기에, 믿음을 흔드는 사건이 오면 주문이 깨질 수 있다. 재정적 대안 없이 각성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필자는 AI가 바로 그 실험을 시켜주고 있다고 말한다.

한 겹 더 멀어진 노동과 '스펙터클'

지식노동은 원래 추상적이다. 큰 조직에서는 역할이 다른 역할을 지원하고 그 역할이 또 다른 역할을 받치는 러시아 인형 구조여서 단단한 중심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유일한 구원은 그 일을 사람이 직접 했다는 사실이었다. 실없어 보여도 인간의 사고와 협업, 창의가 담겼기에 그 결과물은 '우리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AI 에이전트가 그 실행을 점점 대신한다. 필자를 포함해 도입을 담당하는 이들은 미래의 노동을 "AI 에이전트 부대를 관리하는 관리자"로 묘사하곤 한다. 보고서 취합, 데이터 추적, 문서 초안처럼 오후를 잡아먹던 잡무를 맡기는 것은 반갑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산출을 요구받는 직원들이 전체 사업 전략, 마케팅 캠페인, 웹사이트, 부서 전략까지 순식간에 생성하는 데 쓰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를 연결한다. 후기 자본주의에서 삶은 직접 체험되지 않고 늘 매개되며, 매체가 경험을 대체한다는 논지다. 엄마와 대화하는 대신 문자를 보내고 여행 대신 유튜브를 본다. 워키즘은 그 축소판으로, 바쁘고 중요하고 유일하게 정통한 것처럼 '보이는' 일이 실제로 그런 것만큼 값어치를 가지며, 일은 영향력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있어 보이기만 하면 된다. AI를 여기에 더하면 노동은 그 가치로부터 한 겹 더 멀어진다. 이제 나는 고객을 사로잡는 제안서를 쓰지 않고 그것을 쓰라고 지시하는 질의문을 작성한 뒤 결과를 검수한다. 이전의 그 일이 공허했더라도 최소한 내 것이었지만, 지금 AI는 워키즘이라는 사업 전체의 가치를 되묻게 만드는 방식으로 조직에 강제되고 있다.

한국의 IT 실무자에게 이 글은 생산성 도구 논쟁을 넘어선 물음을 던진다. 자동화가 잡무를 걷어낼 때 남는 것이 더 인간적인 일인지, 아니면 판단과 실행마저 위임한 뒤 검수만 남는 소외인지는 도입 방식이 가른다. 다만 이 글은 어디까지나 미국 화이트칼라 문화와 필자의 관찰·독서에 기댄 에세이라는 한계가 있다. 통계나 조사가 아니라 개인의 진단이며, 소명 있는 직업과 지식노동을 다소 이분법적으로 나눈다. 그럼에도 성과 압박 아래 AI를 어디까지 위임할지, 그 위임이 구성원이 일에서 느끼는 의미를 어떻게 바꿀지를 조직 차원에서 설계 변수로 다뤄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충분히 곱씹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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