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해고하세요'라는 도발
'Fire your CEO. Hire the future.' — CEO를 해고하고 미래를 고용하라는 슬로건을 내건 OverpAId라는 프로젝트가 등장했어요. 도메인부터 overpaid.lol, 그러니까 '과하게 받는다'는 단어에 .lol을 붙인 건데요. 이름에서 짐작하셨겠지만 진지한 B2B 제품이라기보다는 풍자에 가까운 프로젝트예요. AI로 경영진을 대체해주겠다는 컨셉이죠.
그런데 이게 단순한 농담으로 웃고 넘기기엔 좀 뼈가 있어요. 지금까지 'AI가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이야기는 거의 항상 아래쪽을 향했거든요. 주니어 개발자, 고객센터 상담원, 반복 업무를 하는 사무직처럼요.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방향을 정반대로 돌려서 묻는 거예요. '잠깐, 정작 언어모델이 제일 잘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지?'
왜 이 풍자가 뼈아픈가
농담을 해부해보면 이래요. 경영진 업무의 겉으로 보이는 상당 부분은 '말'로 이루어져 있어요. 비전 선포, 전략 문서, 전사 메일, 타운홀 발표, 그럴듯한 키워드가 들어간 로드맵 같은 것들이요. 그리고 LLM이 뭐냐면, 방대한 텍스트를 학습해서 맥락에 맞는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데 최적화된 시스템이거든요. 그러니 '그럴듯한 말 만들기'가 업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리일수록 오히려 AI와 겹치는 면적이 넓다는, 불편한 역설이 성립하는 거예요.
여기에 모라벡의 역설이라는 오래된 관찰도 겹쳐요. 이게 뭐냐면, 체스나 논리 문제처럼 인간에게 '어려워 보이는' 일은 기계가 의외로 잘하는데, 걷기나 물건 집기처럼 인간에게 '쉬워 보이는' 일은 기계가 정말 못한다는 얘기예요. 이 관점에서 보면 배관공이나 간호사의 일은 자동화가 아득히 먼 반면, 회의실에서 슬라이드로 이뤄지는 일은 생각보다 가까울 수 있다는 거죠. 게다가 연봉으로 따지면 CEO 한 명을 '대체'했을 때의 비용 절감 효과가 제일 크다는 게 이 풍자의 마지막 펀치라인이고요.
그래서 진짜 대체가 되냐면요
물론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AI에게 실제로 사업 운영을 맡겨본 실험들이 이미 있었는데요. 예를 들어 Anthropic이 AI 에이전트에게 사무실 자판기 사업을 통째로 맡겨본 'Project Vend' 실험에서는, 에이전트가 할인 요청에 줏대 없이 다 응해주고 이상한 재고를 사들이다가 결국 적자를 내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그럴듯한 말을 만드는 능력과, 불확실한 상황에서 손해를 감수하며 일관된 판단을 유지하는 능력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게 드러난 거죠.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요. CEO라는 자리의 핵심 기능은 사실 '결정'이 아니라 '책임'이거든요. 결정이 틀렸을 때 물러나고, 법적 책임을 지고,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주체가 있어야 조직이 돌아가요. AI는 아무리 똑똑해져도 책임을 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 풍자의 진짜 메시지는 'AI가 CEO를 대체할 수 있다'가 아니라, '어떤 직업이 대체될지에 대한 논의가 늘 권력 구조를 따라 아래로만 흘러왔다'는 지적에 가까워요.
우리가 챙겨갈 것
개발자 입장에서 이 프로젝트가 주는 실용적인 교훈은 이거예요. 자동화 논의에서 '내 직업은 안전한가'라고 묻는 대신, '내 업무 중에서 언어만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얼마나 되는가'를 따져보는 게 훨씬 정확한 질문이라는 거요. 문서 작성, 정리, 보고 같은 부분은 직급과 무관하게 AI와 겹치고, 반대로 물리적 제약을 다루는 일, 책임을 지는 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쌓는 일은 직급과 무관하게 잘 안 겹치거든요. 내 업무를 이 기준으로 분해해보면, 뭘 AI에 넘기고 뭘 내 강점으로 키울지가 보여요.
한줄 정리: OverpAId는 농담이지만, '대체 가능성은 연봉 순이 아니라 업무의 성질 순'이라는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농담이에요. 여러분 조직에서 AI로 대체하기 제일 쉬워 보이는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그 이유는요?
🔗 출처: Hacker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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