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를 만드는 공장을, 아예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겠다고요?
혹시 짐 켈러(Jim Keller)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반도체 설계 쪽에서는 거의 전설로 통하는 인물이에요. AMD를 되살린 라이젠(Ryzen)의 젠(Zen) 아키텍처, 아이폰 초창기 칩, 테슬라 자율주행 칩, 인텔의 설계까지, 우리가 쓰는 웬만한 칩의 뿌리에 이 사람 손길이 닿아 있거든요. 그런 그가 요즘은 Tenstorrent라는 AI 칩 회사를 이끌면서, 동시에 Atomic Semi라는 또 다른 스타트업에도 발을 담그고 있어요. 그런데 이 Atomic Semi가 회사 이름을 'Fab2'로 바꾸고 본거지를 텍사스로 옮기면서, 엉뚱하면서도 대담한 목표를 다시 꺼내 들었어요. 바로 '반도체 공장 그 자체를,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겠다'는 거예요.
기존 반도체 공장이 어떤 물건이냐면요
이게 왜 파격이냐면, 반도체 공장이 도대체 어떤 물건인지 알면 바로 이해가 돼요. 반도체 만드는 공장을 흔히 '팹(fab)'이라고 불러요. 제조를 뜻하는 fabrication에서 따온 말이에요. 그런데 이 팹 하나 짓는 데 드는 돈이 상상을 초월해요. 최신 공정 팹은 하나에 수십조 원, 그러니까 웬만한 중소 국가의 1년 예산급 돈이 들어가요. 삼성전자나 TSMC 같은 극소수 회사만 감당할 수 있는 규모죠. 짓는 데도 몇 년씩 걸리고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참신한 칩 아이디어가 있어도 소량으로 시험 삼아 만들어보는 것조차 엄청나게 비싸고 오래 걸려요. 진입 장벽이 사실상 만리장성인 셈이에요.
발상을 뒤집은 Atomic Semi(Fab2)
Atomic Semi의 발상은 바로 이 지점을 뒤집어요. '팹이 꼭 이렇게 거대해야 할 이유가 있나? 작고, 싸고, 빠르게 지을 수 있는 팹을 만들면 되지 않나?' 하는 거죠. 목표는 거대한 팹 하나가 아니라, 방 한 칸 크기의 작은 팹을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요. 그 작은 팹을 하나하나 수제로 짓는 게 아니라, '작은 팹을 찍어내는 공장'을 세워서 여러 대를 대량 생산하겠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미니 공장을 생산하는 공장'인 셈이죠. 이번에 텍사스로 옮겨가며 세우려는 게 바로 이 생산 거점이에요.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 이야기를 하면 이 야심이 더 실감 나요. Sam Zeloof라는 사람인데, 놀랍게도 자기 집 차고 수준의 개인 실험실에서 직접 반도체 칩을 만들어낸 걸로 유명해졌거든요. 원래 수조 원짜리 설비가 있어야 하는 일을, 개인이 손수 해낸 거예요. 이런 '팹을 최대한 작고 단순하게 압축한다'는 정신이 그대로 회사의 방향이 된 거죠.
업계 흐름 속에서 보면요
요즘 반도체 업계의 큰 화두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미국이 자국 안에 팹을 다시 짓는 '리쇼어링'이고, 다른 하나는 큰 칩 하나 대신 작은 칩 조각(칩렛, chiplet)을 레고처럼 붙이는 흐름이에요. 그런데 이 둘은 대부분 여전히 '거대 팹'을 전제로 해요. Atomic Semi는 정반대 방향에서 접근하는 거예요. 거대함이 아니라 '작고 분산된' 팹으로 판을 바꾸겠다는 거죠. 성공한다면 대학 연구실이나 하드웨어 스타트업도 자기만의 칩을 빠르게 시제품으로 뽑아볼 수 있게 돼요. 소프트웨어에서 누구나 서버 하나 빌려 서비스를 띄우게 된 것처럼, 하드웨어에서도 비슷한 민주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상상이에요.
한국 개발자·업계에 주는 시사점
한국은 메모리와 파운드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강국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초소형 팹' 흐름이 당장 삼성이나 SK하이닉스를 위협하진 않아요. 이들의 강점은 여전히 거대 규모의 초미세 공정이니까요. 하지만 시선을 조금 넓히면 얘기가 달라져요. 칩 시제품을 값싸고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되면, 그동안 엄두도 못 냈던 하드웨어 스타트업이나 대학의 도전이 쏟아질 수 있어요.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도 이건 남 일이 아니에요. 특정 AI 연산에 딱 맞춘 맞춤형 칩을 소량 제작하는 문이 열리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경계에서 새로운 기회가 생기거든요. 당장 써먹을 기술은 아니지만, '하드웨어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는 방향'이라는 신호로 눈여겨볼 가치가 충분해요.
마무리
정리하면, 짐 켈러와 그의 동료들은 '거대한 팹 하나'가 아니라 '작은 팹 여러 대를 찍어내는 공장'이라는 정반대 길로 반도체 제조의 문턱을 낮추려 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보세요? 소프트웨어처럼 하드웨어도 누구나 만드는 시대가 정말 올까요, 아니면 반도체만큼은 끝까지 규모의 게임으로 남을까요?
🔗 출처: Hacker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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