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하이퍼카드(HyperCard)'라고 들어보셨나요? 1987년에 애플이 매킨토시에 기본 탑재했던 소프트웨어인데요, 프로그래밍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카드 위에 버튼과 그림을 올려놓고, 클릭하면 다른 카드로 넘어가게 만드는 식으로 '나만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해준 도구였어요. 웹과 하이퍼링크가 대중화되기 전에 이미 그 개념을 구현했던 물건이라, 지금도 많은 개발자들이 "개인용 컴퓨팅의 이상향"으로 추억하는 전설적인 소프트웨어거든요. 그 유명한 어드벤처 게임 '미스트(Myst)'의 초기 버전도 하이퍼카드로 만들어졌을 정도예요.
그런데 이 하이퍼카드의 정신을 계승한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있어요. 이름은 Decker인데요, 흑백 1비트 그래픽의 클래식 맥 감성을 그대로 살리면서, 요즘 환경에서 돌아가도록 만들어진 창작 플랫폼이에요.
Decker가 뭐냐면요
Decker의 기본 구조는 하이퍼카드와 똑같아요. '덱(deck)'이라는 문서 안에 여러 장의 '카드(card)'가 들어 있고, 각 카드 위에 버튼, 텍스트 필드, 그림 같은 '위젯'을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어요. 버튼을 누르면 다른 카드로 이동하게 만들 수도 있고, 스크립트를 붙여서 계산기나 미니게임 같은 것도 만들 수 있죠. 파워포인트로 슬라이드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 감각인데, 결과물이 '인터랙티브한 프로그램'이 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재미있는 건 실행 환경이에요. Decker는 C로 짜인 네이티브 버전과 자바스크립트로 포팅된 웹 버전이 둘 다 있어서, 브라우저만 있으면 설치 없이 바로 써볼 수 있거든요. 게다가 만든 덱을 HTML 파일 하나로 내보낼 수 있어서, 완성작을 친구한테 파일 하나 던져주면 그 사람 브라우저에서 바로 실행돼요. 별도 서버도, 앱스토어 심사도 필요 없는 거죠.
스크립트 언어도 직접 만들었는데, 이름이 Lil이에요. 문법이 단순하면서도 리스트와 테이블을 다루는 기능이 강력해서, SQL 비슷한 질의문으로 데이터를 조회하는 것도 가능해요. "프로그래밍을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부담 없게, 그러면서도 표현력은 포기하지 않게"라는 하이퍼카드의 스크립트 언어 하이퍼토크(HyperTalk)의 철학을 잇는 셈이죠.
그리고 그래픽이 전부 1비트 흑백이에요. 요즘 기준으로는 제약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이게 매력 포인트인데요. 색 고민을 할 필요가 없으니 그림에 자신 없는 사람도 디더링(점을 찍어서 명암을 표현하는 기법) 몇 번이면 그럴듯한 화면을 만들 수 있거든요. 제약이 오히려 창작의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좋은 예시예요.
요즘 왜 이런 도구들이 다시 나올까요
사실 Decker만 있는 게 아니에요. 가상의 옛날 게임기를 흉내 낸 '판타지 콘솔' PICO-8이나 TIC-80, 텍스트 게임 제작 도구 Twine, 초간단 게임 메이커 Bitsy 같은 도구들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거든요. 공통점은 "제약이 많은 대신, 혼자서도 끝까지 완성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흐름의 배경에는 소프트웨어가 너무 거대해졌다는 피로감이 있어요. 요즘 앱 하나 만들려면 프레임워크, 빌드 도구, 배포 파이프라인까지 배울 게 산더미잖아요. 반면 하이퍼카드 시절에는 컴퓨터를 쓰는 사람이 곧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었죠. 애플이 2004년에 하이퍼카드를 완전히 단종시킨 뒤로, 그 빈자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이런 도구들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 거예요. 사용자가 직접 소프트웨어를 고치고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즘 다시 주목받는 '말랑말랑한 소프트웨어(malleable software)' 운동과도 맞닿아 있고요.
한국 개발자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당장 실무에 쓸 도구는 아니에요. 하지만 두 가지 관점에서 들여다볼 가치가 있어요. 첫째, 프로토타이핑과 교육 도구로서요. 아이디어를 빠르게 인터랙티브한 형태로 만들어 보거나, 자녀나 비개발자 동료에게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보여주기에 이만한 도구가 드물거든요. 둘째, 제품 설계 관점에서요. 기능을 덜어내고 제약을 의도적으로 디자인해서 오히려 사용자를 창작자로 만드는 접근은, 노코드 도구나 사내 플랫폼을 만드는 분들에게 좋은 참고가 돼요.
정리하면, Decker는 "누구나 만들 수 있었던 시절"의 컴퓨팅을 현대 브라우저 위에 되살린 프로젝트예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요즘 개발 환경이 너무 복잡해졌다고 느끼신 적 있나요? 하이퍼카드 같은 '만들기 쉬운 도구'가 다시 주류가 될 수 있을까요?
🔗 출처: Hacker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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