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대표적 벤처캐피털 안드리센 호로위츠(a16z)는 미국 AI 정책의 방향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려 하고 있다. 공동창업자 마크 안드리센은 미국의 AI 정책을 직접 설계하고 싶어 하며, 실제로 이 회사는 1억 달러 규모의 슈퍼PAC 출범을 도왔고, 전직 파트너들이 정부 요직에 진출했으며, 주(州) 단위 AI 규제를 무력화하려는 행정명령을 이끌어냈다. 문제는 이 회사가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동안, 그들이 자금을 댄 스타트업 상당수가 소비자 보호의 빈틈을 겨냥하거나 명백히 법을 어기고 있다는 점이다. 비영리 감시단체 미다스 프로젝트(The Midas Project)가 정리한 18개 투자 사례는 a16z가 어디까지 선을 넘을 의향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진짜 사람인 척하는 봇 농장
대표적 사례가 2025년 10월 a16z의 스피드런(Speedrun) 프로그램을 통해 100만 달러를 투자받은 더블스피드(Doublespeed)다. 이 회사는 AI로 생성한 광고를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이용자가 실제 사람의 게시물로 착각하도록 만드는 서비스를 판다. 핵심은 '폰 팜(phone farm)'으로, 실제 휴대폰 수천 대를 동원해 가짜 계정을 만들고 관리한다. 이 계정들은 특정 키워드를 검색하고 추천 피드를 스크롤하는 등 사람의 행동을 흉내 낸 뒤 광고 콘텐츠를 올려, TikTok 같은 플랫폼의 가짜 계정 탐지를 회피한다. 404 미디어는 이를 두고 '모든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비진정성 행위 정책을 명백히 위반하는 회사에 a16z가 자금을 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5년 12월 해킹으로 유출된 내부 데이터는 이 봇들이 실제로 무엇을 팔았는지 드러냈다. UCLA 학생을 사칭한 AI 여성 계정이 제약업계를 사기라고 비판하면서 동시에 특정 브랜드의 허브 보충제를 홍보했고, 병상에 누운 환자를 연기한 또 다른 계정은 200여 개 게시물을 통해 폼롤러를 팔았다. 유출 자료에는 휴대폰 1,100여 대와 TikTok 계정 400여 개가 확인됐으며, 대부분이 유료 광고임을 밝히지 않아 TikTok 커뮤니티 가이드라인과 미국 FTC의 인플루언서 공시 규정을 위반했다. 흥미롭게도 창업자 주하이르 라카니 본인조차 보충제 광고에 대해 '이런 건 사실상 불법이어야 한다'고 말했으면서도 사업을 접지 않았다.
'커닝'을 정상화하려는 회사
AI 실무자에게 더 시사적인 사례는 2025년 6월 a16z가 1,500만 달러 시리즈A를 주도한 클룰리(Cluely)다. 이 회사는 '모든 것을 커닝하자'는 선언문을 내걸고 영업 통화, 회의, 협상에서 실시간으로 AI 답변을 몰래 제공하는 제품을 만들었다. 창업자 로이 리는 컬럼비아대 재학 시절 거의 모든 과제를 AI로 처리했다고 인정했고, 코딩 면접용 부정행위 도구를 만들어 아마존 면접을 통과한 뒤 이를 조롱하며 공개해 학사 징계를 받았다. 그는 '치팅(cheating)'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람들에게 둔감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다만 클룰리는 비판이 거세지자 웹사이트에서 시험·면접 부정행위 관련 문구를 삭제하고, 11월에는 스스로를 AI 회의 노트 도구로 재포지셔닝했다. 리는 테크크런치에 '보이지 않는(invisible) 기능은 핵심 기능이 아니며, 대부분의 기업은 법적 문제 때문에 이를 비활성화한다'고 말했지만, 정작 홈페이지 첫 문장은 여전히 제품을 '탐지 불가능(undetectable)'하다고 광고한다. 실무자 입장에서 이는 규제와 여론의 압박 앞에서 노골적 마케팅을 슬그머니 걷어내되 실제 기능은 유지하는 전형적 패턴으로 읽힌다.
취약계층을 겨냥한 도박
포트폴리오에는 도박 회사도 포함된다. 2018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스포츠 베팅이 확산되면서 부채 증가와 재정 취약 가구의 부담 심화 같은 부작용이 보고됐는데, a16z는 규제 허점을 이용해 원래라면 도박법의 보호를 받았을 이용자에게 접근하는 업체들에 투자했다. 2025년 3월 출시된 커버드(Coverd)는 이용자의 은행 계좌와 연동해 OnlyFans 결제, 양육비, 우버 요금 같은 카드 청구 항목에 카지노 게임으로 베팅하도록 한다. CEO는 '지출을 억제하려는 게 아니라 지출을 짜릿하게 만들려고 이 앱을 만들었다'고 공언했지만, 도박의 사업 모델은 본질적으로 기대값이 마이너스인 베팅이며 한 연구는 장기 도박자의 96%가 결국 돈을 잃는다고 본다.
이 사례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사회·직업 생활을 지탱하는 기본 규칙을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간주하는 태도다. 물론 미다스 프로젝트의 조사는 a16z 전체 포트폴리오를 망라한 것이 아니라 18개 사례를 추린 것이므로, 이를 회사의 모든 투자로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다. a16z는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의 IT 실무자와 정책 담당자에게 이 자료가 주는 함의는 분명하다. 딥페이크와 AI 생성 콘텐츠로 무엇이든 위조하기 쉬워지는 환경에서, 규제 완화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자본이 동시에 어떤 제품에 돈을 대고 있는지를 함께 보아야 그 주장의 이해관계를 온전히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